광반도체(CPO)란 무엇인가? AI 데이터센터가 빛으로 연결되는 이유
저는 초등학생 때부터 컴퓨터 게임을 좋아했습니다.
그때는 바람의나라가 막 인기를 끌던 시기였습니다. 집에서 게임을 하려면 모뎀으로 인터넷에 접속해야 했는데, 인터넷을 사용하면 집 전화가 끊겼고, 게임을 오래 하면 전화요금 폭탄이 나왔습니다. 전화비가 많이 나온 달에는 어머니께 등짝 맞은 기억이 선명합니다.
그러다 1999년쯤 유승준이 광고하던 ADSL이 나오면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인터넷이 정액제가 되면서 시간이나 전화요금을 신경 쓰지 않고 게임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때는 ADSL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바람의나라나 스타크래프트를 즐기는 데는 큰 불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FPS 게임과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접하자 다시 문제가 생겼습니다.
인터넷이 느리면 핑이 튀고, 렉이 생기면서 게임 자체가 힘들었습니다. 결국 어머니를 설득해서 LG Xpeed 광랜으로 바꿨고, 그때 처음으로 인터넷 기술이 게임 경험 자체를 바꿀 수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인터넷은 계속 같은 인터넷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모뎀에서 ADSL로, ADSL에서 광랜으로 계속 진화했습니다. 더 많은 데이터를 더 빠르고 안정적으로 보내기 위해 결국 전기 신호에서 빛으로 이동한 것입니다.
AI 데이터센터도 지금 비슷한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GPU는 계속 빨라지고 있고 HBM도 발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GPU와 스위치, 랙과 랙을 연결하는 전기 신호가 점점 한계에 가까워지면서 이제는 전기가 아니라 빛으로 데이터를 보내는 기술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 있는 기술이 바로 광반도체와 CPO(Co-Packaged Optics)입니다.
오늘은 AI 데이터센터가 왜 빛으로 연결되려 하는지, CPO가 무엇인지, 그리고 NVIDIA, Broadcom, Marvell, TSMC 같은 기업들이 왜 이 기술에 집중하는지 정리해보겠습니다.
1. AI 서버에서 통신이 중요한 이유
AI 서버는 GPU 하나만 빠르다고 되는 구조가 아닙니다.
대규모 AI 모델을 학습하거나 추론하려면 수천 개, 많게는 수만 개의 GPU가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처럼 움직여야 합니다. GPU마다 맡은 계산이 다르고, 중간 결과를 계속 주고받아야 합니다. 이때 연결이 느리면 전체 시스템이 기다립니다.
GPU가 비싼 이유는 연산을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통신이 느려 GPU가 데이터를 기다린다면, 수억 원짜리 장비가 제 성능을 내지 못하는 상황이 됩니다.
이전 글에서 UALink와 NVLink를 다룬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AI 인프라는 이제 단일 칩 성능보다 칩과 칩, 랙과 랙, 데이터센터 내부 자원을 얼마나 빠르게 연결하느냐가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AI 학습에서는 All-Reduce 같은 동기화 작업이 반복됩니다. 여러 GPU가 계산한 값을 모아 다시 나눠야 하기 때문입니다. 추론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용자의 요청이 많아질수록 데이터는 GPU, 메모리, 스위치, 네트워크를 계속 오갑니다.
결국 AI 데이터센터의 성능은 GPU 계산 성능과 네트워크 연결 성능이 함께 결정합니다.
GPU가 엔진이라면, 인터커넥트는 그 엔진들이 하나의 차처럼 움직이게 만드는 구동축입니다.
2. 전기 신호는 왜 한계에 부딪혔나
지금까지 서버 안의 데이터 전송은 대부분 구리 기반 전기 신호가 담당했습니다.
문제는 속도가 올라갈수록 전기 신호의 손실과 발열이 커진다는 점입니다. 특히 112Gbps를 넘어 224Gbps SerDes 시대로 가면 구리 배선의 물리적 한계가 뚜렷해집니다.
Astera Labs는 224G SerDes 영역에서 30AWG 구리 동축 케이블이 53GHz 대역 기준 미터당 10.23dB 수준의 삽입 손실을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신호가 멀리 가지 못하고 빠르게 약해진다는 뜻입니다.
이 손실을 줄이려면 리타이머나 DSP 같은 보정 회로를 더 넣어야 합니다. 그런데 보정 회로가 늘어나면 전력 소모와 발열도 같이 늘어납니다.
AI 데이터센터에서는 이게 큰 문제입니다.
GPU와 HBM만으로도 전력과 냉각 부담이 커지고 있는데, 네트워크 장비까지 전력을 많이 먹으면 데이터센터 전체 효율이 떨어집니다. 전기 신호로 억지로 더 빠르게 보내려 할수록 비용과 발열이 함께 올라가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등장하는 개념이 Copper Wall, 즉 구리 벽입니다.
구리는 싸고 익숙한 연결 방식이지만, 초고속 AI 데이터센터에서는 더 이상 모든 구간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AI 서버가 빛을 쓰려는 이유는 멋있어서가 아니라, 전기 신호가 더 이상 효율적으로 버티기 어려운 구간에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3. 광반도체는 무엇인가
광반도체, 또는 Silicon Photonics는 데이터를 전기 신호가 아니라 빛 신호로 바꿔 전달하는 기술입니다.
기본 구조는 어렵지 않습니다.
먼저 칩 내부에서 전기 신호가 만들어집니다. 이 신호를 광엔진이 받아 빛으로 바꿉니다. 바뀐 빛은 광섬유를 통해 이동합니다. 반대편에서는 광검출기가 빛을 다시 전기 신호로 바꿔 칩에 전달합니다.
즉 구조는 이렇습니다.
전기 → 빛 → 전기
빛을 쓰면 장점이 분명합니다.
거리가 길어져도 신호 손실이 상대적으로 작고, 대역폭을 크게 늘리기 쉽고, 전기 신호보다 발열과 간섭 부담도 낮출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집 인터넷에서 광랜을 쓰게 된 이유와 비슷합니다. 데이터가 많아지고 속도가 빨라질수록 전기 배선만으로는 한계가 오기 때문입니다.
다만 광반도체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실리콘은 스스로 빛을 잘 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Coherent와 Lumentum 같은 기업이 공급하는 InP 기반 고출력 레이저가 중요합니다. 광반도체는 단순히 칩만 잘 만든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레이저 광원, 광엔진, 패키징, 스위치 ASIC이 함께 맞아야 합니다.
이 지점에서 투자 포인트가 생깁니다.
광반도체는 하나의 기술이 아니라, AI 데이터센터 연결 구조를 바꾸는 새로운 공급망입니다.
4. CPO는 무엇인가
CPO는 Co-Packaged Optics의 약자입니다.
말 그대로 광엔진을 스위치 칩 가까이에 함께 패키징하는 기술입니다.
기존 방식은 스위치 ASIC과 광모듈이 떨어져 있습니다. 스위치 칩에서 나온 전기 신호가 보드 위 긴 구리 배선을 지나 서버 앞쪽의 플러그형 광모듈까지 이동합니다. 이 과정에서 신호 손실이 생기고, 이를 보정하기 위해 전력도 많이 씁니다.
CPO는 이 구조를 바꿉니다.
광엔진을 스위치 ASIC 바로 옆으로 가져옵니다. 전기 신호가 이동하는 거리를 최대한 짧게 만들고, 빠르게 빛으로 바꿔 광섬유로 보내는 방식입니다.
이 차이는 매우 큽니다.
Broadcom의 CPO 플랫폼은 기존 플러그형 광모듈 구조에서 발생하던 전력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설계됐습니다. Broadcom Bailly는 51.2Tbps CPO 스위치 플랫폼으로 소개됐고, 차세대 Davisson은 102.4Tbps급 스위치로 확장되는 흐름입니다.
CPO의 핵심은 단순히 더 빠른 광모듈이 아닙니다.
전기 신호로 버텨야 하는 거리를 줄이고, 빛으로 보내는 구간을 칩 가까이까지 끌고 오는 구조 변화입니다.
이것은 광랜이 집 앞까지만 오는 것과 집 안 깊숙이 들어오는 것의 차이와 비슷합니다. 빛을 최대한 가까운 곳까지 가져올수록 전체 시스템의 손실과 병목이 줄어듭니다.
5. 누가 CPO 경쟁을 주도하고 있나
CPO와 광반도체 경쟁은 한 회사가 혼자 장악하기 어렵습니다.
먼저 TSMC가 중요합니다.
TSMC는 COUPE(Compact Universal Photonic Engine) 플랫폼을 통해 전자 집적회로와 광학 집적회로를 더 가깝게 결합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TSMC는 SoIC-X 기반 3D 이종 집적 기술을 활용해 전자 칩과 광학 칩을 한 패키지 안에 결합하는 구조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NVIDIA입니다.
NVIDIA는 GPU, NVLink, Spectrum-X, 네트워크 스위치까지 AI 인프라 전체를 묶는 기업입니다. NVIDIA가 CPO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Rubin 이후 AI 시스템은 GPU 수가 더 늘어나고, 랙 간 연결도 더 복잡해집니다. 이때 전기 기반 연결만으로는 전력과 발열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Broadcom도 핵심 기업입니다.
Broadcom은 스위치 ASIC과 네트워크 반도체에서 강한 기업입니다. Bailly와 Davisson 같은 CPO 스위치 플랫폼은 AI 데이터센터에서 고속 Ethernet과 광연결이 결합되는 방향을 보여줍니다. 특히 Broadcom은 NVIDIA와 다른 개방형 네트워크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큽니다.
Marvell은 광학 인터커넥트와 실리콘 포토닉스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Marvell은 고속 데이터센터 연결 시장에서 광엔진, 스위치, 커스텀 반도체를 연결하는 축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Coherent와 Lumentum입니다.
실리콘은 스스로 빛을 내기 어렵기 때문에 고출력 레이저 공급망이 중요합니다. Coherent와 Lumentum은 InP 기반 레이저 광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NVIDIA가 광학 공급망 확보에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이유도 결국 레이저와 광엔진이 새로운 병목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6. AI 데이터센터는 어떻게 바뀔까
CPO가 본격화되면 AI 데이터센터 구조도 바뀔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변화는 전력 효율입니다.
기존 전기 기반 네트워크는 속도를 높일수록 손실 보정을 위한 전력 소모가 커졌습니다. CPO는 전기 신호가 지나가는 거리를 줄이고 빛으로 전환하는 위치를 칩 가까이 당겨 전력 낭비를 줄이려 합니다.
두 번째 변화는 랙 간 연결입니다.
AI 클러스터는 한 랙 안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여러 랙을 연결해야 하고, 나아가 데이터센터 내부 자원을 더 유연하게 묶어야 합니다. 광연결은 전기 배선보다 거리에 유리하기 때문에 이런 구조 변화에 적합합니다.
세 번째 변화는 분산형 인프라입니다.
Ayar Labs는 TeraPHY와 SuperNova 같은 광학 인터페이스 기술을 통해 가속기, 메모리, 전력 인프라를 더 유연하게 분산 배치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전기 배선에 묶여 한곳에 몰아넣던 구조에서 벗어나, 데이터센터 자원을 광학 패브릭으로 연결하는 방식입니다.
Google도 광 회선 스위칭, 즉 OCS(Optical Circuit Switching)를 데이터센터 네트워크에 활용해 왔습니다. OCS는 전기적 패킷 처리 대신 빛의 경로를 물리적으로 조정해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방식입니다.
이 흐름을 보면 CPO는 단순한 부품 교체가 아닙니다.
AI 데이터센터가 전기 배선 중심 구조에서 광학 패브릭 중심 구조로 이동하는 출발점에 가깝습니다.
7. 시장은 얼마나 커질까
광반도체와 CPO 시장 전망은 조사 범위에 따라 차이가 큽니다.
Yole Group은 실리콘 포토닉스 패키징 전용 모듈 시장이 2024년 42억 달러에서 2030년 248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Yole Group은 이 구간의 연평균 성장률을 약 35%로 제시했습니다.
TrendForce는 AI 특화 고성능 광송수신기 시장을 더 넓게 봅니다. TrendForce는 해당 시장이 2025년 165억 달러에서 2026년 260억 달러로 커질 수 있다고 제시했습니다.
Precedence Research는 글로벌 실리콘 포토닉스 전체 시장을 2025년 28억6천만 달러에서 2034년 287억5천만 달러까지 성장할 수 있는 시장으로 봤습니다.
이 숫자들은 서로 다르게 보입니다.
하지만 이유가 있습니다. Yole Group은 실리콘 포토닉스 모듈 중심으로 보고, TrendForce는 AI 데이터센터용 광송수신기 전체를 더 넓게 잡습니다. Precedence Research는 실리콘 포토닉스 전체 시장을 장기 관점에서 봅니다.
범위는 다르지만 방향은 같습니다.
AI 데이터센터가 커질수록 광학 연결 시장도 커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8. 투자자가 봐야 할 핵심
투자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CPO라는 단어 자체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병목이 어디로 이동하느냐입니다.
GPU가 부족하면 NVIDIA가 주목받았습니다. HBM이 부족하면 SK하이닉스, 삼성전자, Micron이 주목받았습니다. CoWoS가 부족하면 TSMC가 중요해졌습니다. 이제 데이터 이동과 전력 효율이 병목이 되면 광반도체와 CPO 생태계가 중요해질 수 있습니다.
먼저 TSMC는 광학 칩과 전자 칩을 결합하는 패키징 플랫폼에서 중요합니다.
Broadcom은 고성능 스위치 ASIC과 CPO 플랫폼에서 핵심입니다.
NVIDIA는 AI 시스템 전체를 장악한 상태에서 광학 인터커넥트까지 흡수하려 합니다.
Marvell은 광학 연결과 커스텀 반도체 사이에서 기회를 찾고 있습니다.
Coherent와 Lumentum은 레이저 광원 공급망에서 중요합니다.
Ayar Labs 같은 비상장 기업도 장기적으로 봐야 합니다. 지금 당장 상장 투자 대상은 아니지만, 광학 인터커넥트가 데이터센터 구조를 바꾼다면 이런 기술 기업들이 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CPO 투자의 핵심은 광모듈 하나가 아니라, AI 데이터센터의 연결 방식이 전기에서 빛으로 이동하는 흐름을 보는 것입니다.
9. 결론: AI 서버는 결국 빛으로 더 가까이 연결된다
모뎀에서 ADSL로, ADSL에서 광랜으로 바뀌면서 인터넷 경험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속도가 빨라진 것처럼 느꼈지만, 실제 변화는 더 컸습니다. 전화선을 붙잡고 있던 인터넷이 독립 회선으로 바뀌었고, 이후 광케이블이 들어오면서 더 많은 데이터를 더 안정적으로 보낼 수 있게 됐습니다.
AI 데이터센터도 지금 비슷한 길을 걷고 있습니다.
GPU와 HBM은 계속 발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기 신호만으로는 늘어나는 데이터 이동량과 전력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Astera Labs가 제시한 224G SerDes 구간의 미터당 10.23dB 삽입 손실은 구리 기반 전기 연결이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Broadcom의 51.2Tbps Bailly와 102.4Tbps Davisson은 스위치 시장이 광학 통합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Yole Group과 TrendForce의 시장 전망도 AI 데이터센터용 광연결 시장의 성장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결국 CPO는 단순한 신기술이 아닙니다.
AI 서버가 더 많은 GPU를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연결하기 위해 선택하는 구조적 변화입니다.
앞으로 AI 인프라 투자는 GPU, HBM, CoWoS에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데이터가 이동하는 길, 그 길의 전력 효율, 그리고 빛으로 연결되는 새로운 네트워크 구조까지 봐야 합니다.
AI 서버는 점점 더 많은 데이터를 처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데이터를 옮기는 방식은 점점 더 전기에서 빛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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